딸기를 으깨며 - 다나베 세이코 -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의 작가 다나베 세이코.
그 영화의 뭐랄까 인생의 묘미를 다룬,
그 아기자기하고 디테일한 분위기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망설임 없이 선택하게 되는 작가.
게다가 책의 표지도 은근히 예쁘다.
결혼과 이혼,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남녀 간의 사랑을 그녀만의 시각으로 다룬 책.
뭐 중간중간 더러는 공감도 할 수 있었고,
하지만 해 보지 않은 결혼과 이혼이기에 그렇구나 싶은 부분도 물론 있었던 책.
일본 소설 특유의 쉽게 읽히는, 감성적인, 가벼운 책 중의 하나.
요즘 내가 조금 지쳤는지 가끔 드는 생각이,
치열하게 굳이 모든 것을 다 아웅다웅 살 필요가 있을까,.. 이런 생각인데,
그러한 마음 자세와 그러한 삶의 아름다움,을 소소하게 다루고 있는 책이다.
아래는 밑줄 긋기.
- 밑줄 그은 부분들만 읽어 보니, 더욱 와 닿네.
결혼생활이란 긴장의 연속으로,
상대방을 항상 같은 컨디션으로 대하고 상냥하게 배려한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연극 같다는 느낌이 든다.
서른셋 정도까지는 나도 연기력이 제법 뛰어났지만, 지금 이 나이가 되고 보니 ......
지금은 서른 다섯, 황금의 서른 다섯, 한창때인 서른 다섯, 뭐든지 알고 있는 -그렇다고 믿는- 서른 다섯,
건강미 넘치고 터질 듯 속이 꽉 찬 서른 다섯, 맛있는 것 좋은 것을 제일 잘 아는 서른 다섯,
인생의 참맛, 여자로 태어나 행복했어, 행복했어, 행복했어! 라고 말할 수 있는 서른 다섯,
남자의 참맛, 남자의 자랑스러움, 남자의 매력, 남자의 훌륭함, 남자에 대한 욕구를 너무나 잘 아는 서른 다섯이다.
지금 나는. ..... 속이기 위한 연기력 같은 건 더 이상 발휘할 수 없게 되었다.
연기력은 터진 곳을 꿰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생을 보다 즐겁게 하기 위해 발휘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행복이냐고 묻는다면,
옛날 일은 모두 '저세상 일'처럼 느껴지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그만큼 지금 생활에 충실하다는 거니까.
정확히 말해 여기서 말하는 '저세상'이란 '이전 세계'라는 정도의 의미지,
앞으로 우리가 가게 될 미래의 '저세상'은 아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돈벌이가 있으면 턱없이 욕심부릴 일은 없었다.
기껏 결혼이라는 '형무소'에서 간신히 출소했는데, 이번에는 다시 '일'이라는 형무소에 복역할 일이 뭐 있겠는가.
혹은 '돈벌이'라는 고역에 몸을 축낼 일이 없지 않은가.
운 좋게 돈을 엄청 많이 번다면 고의 별장 같은 것을 내 힘으로 만들면 좋겠지만,
그것도 허세 부리지 않고 무리도 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다.
돈벌이와 마찬가지로 남자도 허세도 무리도 하지 않고, 어쩌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기면 좋겠지 하는 정도이다.
나는 서두르지 않는다.
그러는 편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나는 고가 사준 것은 모조리 두고 나왔다.
이혼으로 다투는 사람들 중에는 경제나 물질적 조건의 타협을 보지 못해 애를 먹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나에게 그들은 예컨대 항아리 속의 알사탕을 잔뜩 쥐고 항아리의 좁다란 주둥이로 손을 빼내려는 사람처럼 보인다.
알사탕을 손에서 놓지 않는 이상 항아리에서 손을 뺼 수 없다면 미련 없이 놓아버려야 한다.
만일 나도 그때 손에 쥐고 놓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싸웠을지 모를 일이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포기했기 때문에 그야말로 술술 일이 풀렸는지 모른다. 잘은 모르지만.